국방부가 2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 업무를 하다 갑자기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측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북방한계선(NLL) 인근 소연평도 남쪽 1.2마일 해상에서 업무 중 실종된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 씨가 타고 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스1]
서해상에서 어업지도에 나섰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 씨(47)는 21일 오전 11시 30분 선상에서 사라졌다.
이때부터 해상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씨는 22일 오후 3시 30분쯤 북한 해역에서 북측 수상사업소 선박과 접촉했다.
그러나 이 씨는 구조되지 않은 채 잠적했다.
이 씨는 이후 6시간 동안 해상에 방치돼 있다가 북측으로부터 밤 9시 40분경 피격됐다.
북측은 이 씨의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시신은 수습하지 않고 바다에 유기했다.
북측 해역에서 숨진 우리 국민의 사망 경위를 국방부의 24일 브리핑을 통해 재구성하면 이렇게 됐다.
어제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운 북한의 행동은 국제적으로도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다.
이 씨가 비록 월북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구조하기는커녕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셈이다.
국제법은 북한의 만행을 비인도적 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제98조)은 모든 국가는 자국 선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바다에서 조난 위험에 빠진 어떠한 인명도 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즉시 구조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되어 있다.
이 규정은 국제사회에서 해상을 표류하는 민간인을 구조하는 근간이 되는 것은 물론 불법성 논란이 있는 이른바 보트 피플(고무보트를 타고 입국을 시도하는 난민들)의 구호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
일단 인명은 구한 뒤 인근 국가에서 입국 허용 여부를 결정하자는 취지다.
북한은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에 서명만 했을 뿐 현재까지 정식 비준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유엔 관련 회의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아산정책연구원 이기범 박사는 “북한의 행동은 선박의 구조 의무를 넘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해상이 아닌 북측 영해에 들어가더라도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1949년)은 무기를 버리거나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 대우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씨의 시신을 해상에 태워 유기했지만 이는 ‘민간인에 대한 생명·신체에 대한 살인, 개인의 존엄에 대한 모욕적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는 굳이 관련 국제법 규정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 중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통상적인 국제법을 적용할 수 없는 특수관계임을 백번 감안하더라도 북측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북한의 이번 만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 등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남북은 육해공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나 유엔 등 국제사회를 동원한 압박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운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으나 북한에 대한 제재는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부도 정례브리핑을 통해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북한의 비인도적 행위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을 통해 압박할지, 유엔 차원의 문제 제기를 할지에 대해서도 주요국과는 긴밀한 소통이 항상 이뤄지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조치로 독자 제재를 위한 524조치를 취했다.
여기에는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지원 사업 원칙 보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때는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